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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따이한]길승호 한많은 생을 마감하다.

SaigonKim 2010. 12. 29. 00:52


캄란의 슬픈 이야기

월남전때 캄란 수진마을은 미군부대 캄란베이 미국회사에 종사하는 민간인 기술자들이

영외거주하며 살림을 차린 집이 있었고 또한 유흥업소가 많았다. 
그중에 한국음식점 "김하식당"이 있었다.
김하식당 '길종국'사장은 딸이 하나 있는 월남여인과 결혼하여 아들 둘이 태어났다. 길종국씨는 월남이 패망하면서 싱가폴로 가셨는데 같이 가신 동료들의 말에 의하면 사고로 생을 마감하셨다고 합니다.



큰아들 '길승기'는 39세때 베트남 까나 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였고,
하나 남아있던 아들 "길승호"가
캄란 수진마을 뼈대만 앙상한 그 건물1층에서 미용실을 하며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마져.........




“딱 한번만이라도 한국땅을 밟아 보고 싶다"더니
살아생전 “딱 한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다던 아버지" 소식도 듣지 못한체...
끝내 소원을 이루지못한체 43세 나이로
세상을 하직 했답니다.



길승호는 낮에는 미용기술로 미용실을 하며 살았고, 야간에는 여장을 하고 밤무대 가수로 활약하여
캄란에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답니다.




마지막 가는 길 외롭지는 안았습니다. 여고생까지 많은 사람의 조문행열이 있었습니다




캄란에 가면 만날 것 같은 라이따이한 길승호...비운의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캄란 수진마을 토박이로 살았고 착하게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장례식이 잘 치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웃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승호는 아주 착한 사람으로 소문나 있었답니다.




길승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동네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여 명복을 빌었습니다.



혼롱산이 바라다 보이는 묘지에 한국인의 이름으로 라이따이한 형제가 나란히 눕게 되었습니다.




길승호는 캄란지역과 퀴논의 라이따이한 2세들까지 모두 알고있는 총무격이었는데,
라이따이한 찾기도 이제 점차 어렵게 되었답니다.  

길승호가 태극기도 늘 소중히 간직했는데 그게 더 슬펐답니다.
승호야 살아생전 좀더 도움을 주지못해 미안 하구나부디 저승에서나마 오매불망 꿈에도 그립던 아버지를 만날수 있기를 바란다. 

 


전쟁의 슬픔은 이제그만, 하늘나라로 간 길승호군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2010.12.20. 18:00. 

                                                                                                        Saigon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