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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고엽제 환자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43009230003745?type=AB8 "나도 고엽제 피해자" 월남전 참전용사, 베트남서 피해자 돕는 이유 [아세안속으로] | 한국일보1975년 4월 30일 베트남전(1955~1975년)이 막을 내렸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깊다. 특히 미군이 정글 시www.hankookilbo.com베트남전 종전 반세기1966년 공수부대 소속 파월, 14개월 참전만성폐쇄성 폐질환, 다리 말초신경병 진단"한-베, 고엽제가 남긴 상처 함께 보듬어야"이미지 확대보기15일 베트남 호찌민 구찌현에 위치한 띠엔즈옌 복지원에서 고엽제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한국인 김성찬(왼쪽 세 번째)씨가 3세 피해자, 봉사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한국일보설문지

[김성찬 선생님 인터뷰 질문지]1. 선생님에 대한 소개를 자세히 부탁드립니다.본인은 1966년 공수부대로 파월한 참전자 입니다.(생년/언제부터 베트남에 살고 계신지/현재 소속과 맡고 계신 직책 등 어떤 일을 맡고 계신지)생년월일,1947년09월16일.2003년~현재까지.베트남 호치민 고엽제 피해자 협회 사진및 미디어 선전부 홍보당담(Photography and Media Propaganda Department) 2. 언제부터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들을 위해 활동하셨습니까.2007년 ~현재까지 (몇월인지는 기억이 없슴) 3.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몇 명 대상으로 활동하셨고, 어떤 지원을 하셨나요)호치민 고엽제 피해자 협회 장 (THIẾU TƯỞNG TRẤN NGỌC..

나 어릴적 희망가.

나 어릴적.1953년 나의 아벗님은 전투경찰로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을 하였고 나는 어머님 손을 잡고 내고향 함남 고원을 떠나 남으로 피난 내려와 김포에 정착하여 어린시절을 보냈다.나는 국민학교 다닐때 희망가이 노래를 많이 들었다.춥고 배고팠던 시절 이밥에 고깃국 배터지게 실컷 많이 먹어 보는게 소원이였다.굶주린 배를 물로 채워가며 하루 하루를 정말 너무 비참하게 살았었다.배고픔을 채우려고 17세 나이에 육군 LTV 장기복무자로 지원 입대하여 제1공수특전단 에서 훈련받고 복무하던중 9X 공수특전대로 파월하여 1년간 복무하기도 하고 전역후 이런저런 힘든일 안해본게 없었다.내 가족들은 나와 같은 배고픔을 격지 않도록 뼈가 부서지게 피땀흘려 열심히 일만한 결과 남부럽지 않게 부를 축적하며 어릴적 소원이였던 이밥..

자유게시판 2025.02.28

고엽제환자 위로방문

2024년 12월29일 호치민 구찌 (Củ Chi)지역 고엽제 환자 위로방문.TRẠM Y TẾ Xà PHẠM VĂN CỘI 병원.ĐỊA CHỈ ĐƯỜNG PHẠM VĂN CỘI, ẤP 3, XàPHẠM VĂN CỘI HUYỆN CỦ CHI필자는 고엽제 환자들에게 1천만동 기부금을 전달하였다. 양손이 없어 불편 한데 그림을 너무 잘그린다.  고엽제 환자.필자는 ORENO 팔도라면 1천개를 후원하였다. 베트남 호치민 구찌지역 고엽제 환자에게 작은 위로의 선물을 전달했다.

외국인 봉사상 대상.

베트남 거주 20여년 동안 베트남 고엽제피해자 를 위해 봉사했다고 외국인으로 유일하게 내가 외국인 봉사 대상을 받았다.이곳에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있는데 내가 60년전 파병했었다...............그들로 부터 외국인 봉사 대상을 받았다는게 머릿속이 멍하다.뭐라고 설명을 해야할지......                                           호치민 고엽제 피해자 협회 회장 소장 쩐윽토.                          HỘI NAN NHÂN CHẤT  ĐÔC DA CAM DIOXIN THÀNH PHỐ HÔ CHÍ MINH.                                              chủ tịch. Thiếu tướng TRÂN NGỌC TH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