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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고엽제/고엽제[CHẤT ĐỘC DA CAM]

나도 고엽제 환자다.

SaigonKim 2025. 5. 2. 11:16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43009230003745?type=AB8

 

"나도 고엽제 피해자" 월남전 참전용사, 베트남서 피해자 돕는 이유 [아세안속으로] | 한국일보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전(1955~1975년)이 막을 내렸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깊다. 특히 미군이 정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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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베트남전 종전 반세기
1966년 공수부대 소속 파월, 14개월 참전
만성폐쇄성 폐질환, 다리 말초신경병 진단
"한-베, 고엽제가 남긴 상처 함께 보듬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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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베트남 호찌민 구찌현에 위치한 띠엔즈옌 복지원에서 고엽제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한국인 김성찬(왼쪽 세 번째)씨가 3세 피해자, 봉사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호찌민=허경주 특파원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전(1955~1975년)이 막을 내렸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깊다. 특히 미군이 정글 시야 확보를 위해 살포한 고엽제는 적군과 아군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베트남 정부는 최대 480만 명의 국민이 고엽제에 노출됐고, 이 중 약 300만 명이 직접 피해를 입었다고 추정한다. 참혹한 후유증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베트남에서는 4세대 유전 피해자 약 2,000명이 태어나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고엽제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처럼, 베트남에서도 이 문제는 역사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다.

 

현지에서도 고엽제 피해 지원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고통을 어루만지려는 노력은 베트남인만의 몫이 아니다. 파월(派越) 참전용사 김성찬(78)씨는 고엽제 후유증과 50년 넘게 싸워온 생존자다. 동시에 20년 가까이 현지 고엽제 피해자를 지원해왔다.

왜 한때 베트남에 총구를 겨눴던 노병은 베트남 피해자들을 도울까. 김씨는 베트남전 종전 50주년을 보름 앞둔 지난달 15일 “고엽제로 고통받는 이들은 정치나 이념과 무관한 ‘시대의 피해자’”라며 “한국과 베트남이 전쟁 후 과거를 치유해온 것처럼 고엽제가 남긴 상처도 함께 보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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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베트남에 파병한 그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다리 말초신경에 장애가 생긴 탓에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문에 보행 보조장치를 이용해야 한다. 보훈병원 입원 당시 김성찬씨 모습. 김성찬씨 제공

 

고엽제 후유증과 싸워온 삶

김씨는 1966년 6월 공수부대 소속으로 파월해 14개월간 베트남 중부 냐짱(나트랑) 인근 닌호아 정글을 누볐다. 귀국 후 평범한 일상을 보냈지만, 5년 뒤 갑작스러운 체력 저하를 겪었다.

알 수 없는 병세에 일상이 무너져 내렸다. 휴대용 산소호흡기 없이 숨쉬기도, 보조기 없이 걷기도 힘들었다. “일이 고돼서 그런 줄 알았지, 고엽제 후유증은 생각도 못 했다”며 “20년 넘게 ‘원인 모를 병’ 때문에 병원만 오갔다”고 그는 회상했다.

1991년 고엽제 실상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김씨도 자신의 질병과 고엽제 연관 가능성을 알게 됐다. 3년 뒤 중앙보훈병원에서 ‘고엽제에 의한 만성폐쇄성 폐질환과 다리 말초신경병’ 진단을 받고 5급 전상군경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어디서 노출됐을까. 그는 고엽제로 오염된 냇물을 떠올렸다. “월남 날씨가 워낙 더워 수통 두세 개도 금세 비웠어요. 식수가 떨어지면 냇물을 그냥 떠 마셨죠.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병명을 알아도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근본적 치료가 어려운 고엽제 후유증은 그를 여전히 괴롭혔다. 2003년, ‘죽기 전 청년 시절을 바친 월남 땅을 밟아보자’는 생각에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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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참전용사 김성찬씨가 베트남고엽제피해자협회(VAVA)와 함께 호찌민시 한 고엽제 피해자의 집을 방문해 환자를 위로하고 있다. 김성찬씨 제공

 

“아픈 역사 반복되지 않길”

2008년 김씨는 베트남고엽제피해자협회(VAVA)와 인연을 맺고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VAVA는 피해자 권리 옹호, 생계지원, 사회 복귀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다.

그가 만난 피해자들은 사지가 뒤틀리거나 거동이 불편했다. 머리가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 마흔이 넘었지만 신체와 정신은 대여섯 살 수준인 이들도 있었다. 가족들은 경제적 부담과 간병이라는 이중 짐을 안고 힘겹게 살아갔다.

“나 역시 고엽제 후유증과 평생 싸워왔다. 피해자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 끝나지 않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전하고 싶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그는 17년째 VAVA 호찌민 지부 사진·미디어 선전부 홍보 담당으로 피해자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김대종 베·한 문화교류센터장 겸 베트남고엽제협회(HOAVAVA) 재단 이사장 등 피해자 지원에 앞장서는 교민들과 기금을 모아 생필품을 전달하고, 한국 기업·의료기관과 연계해 치료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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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참전용사 출신 김성찬씨가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들을 도운 공로로 지난해 현지 정부로부터 받은 상장. 호찌민=허경주 특파원

활동은 쉽지 않았다. 건강이 안 좋은 그에게 장거리 이동은 큰 부담이다. ‘한국인이 왜 베트남 사람을 돕느냐’는 비난을 들은 적도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고, 외국인임에도 피해자의 어려움을 알린 공로로 지난해 베트남 정부로부터 봉사 대상을 받았다.

김씨는 여전히 병마와 싸운다. 폐질환으로 말을 잇기도 버겁고, 10m만 걸어도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춰야 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래도 그는 돕는 손길을 거두지 않는다. 베트남전 종전 50주년을 맞는 소회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전쟁만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싸웠지만 전쟁은 기억에도, 몸에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미래 세대는 고통 속에 살지 않기를 바란다.”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