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찬 선생님 인터뷰 질문지]
1. 선생님에 대한 소개를 자세히 부탁드립니다.
본인은 1966년 공수부대로 파월한 참전자 입니다.
(생년/언제부터 베트남에 살고 계신지/현재 소속과 맡고 계신 직책 등 어떤 일을 맡고 계신지)
생년월일,1947년09월16일.
2003년~현재까지.
베트남 호치민 고엽제 피해자 협회 사진및 미디어 선전부 홍보당담(Photography and Media Propaganda Department)
2. 언제부터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들을 위해 활동하셨습니까.
2007년 ~현재까지 (몇월인지는 기억이 없슴)
3.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몇 명 대상으로 활동하셨고, 어떤 지원을 하셨나요)
호치민 고엽제 피해자 협회 장 (THIẾU TƯỞNG TRẤN NGỌC THỔ.육군소장,쩐응옥 토)과 함께 베트남 남부지역 의 고엽제 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방문하여 생필품을 전달 함과 치료할수 있도록 도움을 줌니다.
그동안 우리가 방문한 환자의 수는 너무많아 몇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4. 베트남 고엽제 피해 현황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현지 정부와 미국이 추산한 고엽제 피해자 규모/베트 남은 왜 고엽제 피해가 심각합니까)
20년전에 미국에서 베트남 고엽제 환자 실태 조사 한것은 약 3백만명이고 베트남 정부에서 실태파악한환자수는 미등록 환자포함 약 5백만명 입니다.
베트남전 당시 월맹군의 진지가 울창한 산림으로 가려져있어 나무를 고사시켜 적진지를 식별하여 공격할수 있게 고엽제라는 제초제를 다량으로 살포했습니다.
5. 고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후대에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고엽제 환자는 일반 환자나 장애인과 달리 육신의 고통을 수시로 겪으며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며 현대의학으론 아직까지 치료할수 있는 약품이 개발되지 않아 현재 3세대 까지 고엽제가 유전되어 고통을 받고있습니다.
6. (선생님 관련 유튜브 영상 등을 보면) 피해자들이 갓난 아기였을 때 또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고엽제에 노출 돼 신체 기형을 앓고 있지만 병원조차 가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직접 만나서 살펴 보신 피해자들 의 다양한 피해 현황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기형 유형, 걷지 못할 정도로 불편한 신체나 심리적 문제? 가 난에 살아야 하는 부수적 피해 등 여러 방면)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기형이나 보행이 어려운 환자들은 호치민 방문하여 직접 보고 인터뷰 하는것이 더 좋을것 같습니다.
태아때부터 샴쌍둥이로 태여나서 대부분 사망하고 일부 환자는 분리 수술을 받아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데 이는 글로서는 표현하가 어려우니 영상이나 사진을 참조해야 합니다.
7. 고엽제 피해는 1세대가 아닌 2세대, 3세대까지 이어진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만난 피해자들은 어떤 어려움을 호소합니까. (신체/정신적 고통/ 취업의 어려움)
팔,다리,가 기형이나 없는 환자들은 가족의 도움이 없이는 삶을 유지하기 어렵고 경제활동도 할수없어 금전적으로도 고통을 받고 있는데 중중 환자에게는 정부로부터 약간의 지원금을 받고있는 실정입니다.
8.가장 기억에 남는 피해자가 있으십니까. 피해자의 사연을 자세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환자의 사연을 어덯게 글로 표현해야 할지 난감한데 사진을 보면서 설명하는게 좋겠습니다.
9. 한국인인 선생님께서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들을 위해 애쓰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 역시 고엽제 환자로 수십년을 죽음과의 사투를 버리며 살다보니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그누구보다 더 잘알고 있으므로 애정을 갖고 말 한마디 라도 위로와 고통을 같이 나누려고 하는것입니다.
10. 선생님께서는 1964~1968년 베트남전 당시 특수공수부대원으로 활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역시 고엽제 피해자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경위로 고엽제에 노출이 되셨습니까. (비엔호아 공군장에서 근무시 간접 노출? 당시 왜 비행장에서는 왜 고엽제를 사용했나요?)
1964~1968년 은 베트남 통역이 잘못 번역이 된것이고 1966~1967년 1년동안 공수특전대로 파월했습니다.
월남전 당시 비엔호아 미군공항 내에는 고엽제 저장 시설이 있었고 그곳에서 베트남 중남부 전지역에 항공기를 이용하여 고엽제를 살포하여 울창한 밀림을 고사시켜 작전을 했습니다.
나는 비엔호아에 근무 하지 않았고 나트랑 윗쪽 닌호아 에서 1년간 작전을 했습니다.
나는 정찰 임무중이나 교전시 휴대한 식수가 모자랄때 개울물을 마시곤 했는데 그때는 물속에 고엽제가 있는지 모르고 마신물이 몇년후 부터 육체의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11. 선생님께서는 고엽제 노출 10년 뒤 후유증이 찾아왔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50년 넘게 병마와 싸우고 계신 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건강 피해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귀국후 한 5년 지나서 부터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체력이 원인을 알수없이 딸리기 시작하여 사회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다가 고엽제 로 인해 만성폐쇄성 폐질환과 다리 말초신경병이란 진단을 받고 이로 인해 현재까지도 호흡곤란을 겪으며 어렵게 살고 있으나 나보다 더 큰 고통속에 사는 환우들에게 미력하나마 도움을 주고 아픔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12. 혹시 이후에 한국 보훈처 등으로부터 피해 인정과 보상 등을 받으셨는지요.
5급 전상군경 유공자판정을 받았고 보훈병원에서 30년 넘게 무상 진료를 받고있습니다.
13. 베트남인들을 위한 선생님의 노고에 베트남 정부가 표창을 줬다고 알고 있습니다. 언제, 어떤 내용으로 받 았는지 궁금합니다.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협회에 외국인으로 유일하게 단 한사람으로 미디어 부분 을 당담하여 사진및 영상을 제작하여 외국의 여러국가 고엽제 협회 에 제공하는 일과 환자들에게 미약하나마 작은 선물을 전해주곤 했는데 이를 베트남 정부에서 봉사활동으로 높은 평가를 하여 2024년8월 베트남 정부 봉사상 대상을 받게되었습니다.
14. 베트남에서 고엽제 피해자들을 위해 활동하시면서 어려우신 점은 어떤 것이 있으십니까. (인식 부족? 자금 문제?)
무엇보다 내 건강이 좋지않아 호흡곤란으로 장거리 이동이 어려웠고 베트남에서 수익사업을하는것도 없어 후원금 조달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15. 이달 말로 베트남전 종전 50주년을 맞습니다. 참전용사로서, 그리고 베트남 교민 중 가장 오래 계셨던 원 로 중 한 분으로서 바라시는 점이 있으신지요. 이같은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쟁을 직접 겪어 보았기 때문에 이 지구상에는 어떠한 목적과 이유가 있어도 전쟁 많은 절대로 이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국가의 명령에 의해 전투를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일상 생활을 해도 전쟁의 가슴 아픈 기억이 영원한 트라우마로 남아 마음의 고통속에 살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리 말초신경병으로 보행이 어려원 보조기와 크러치를 이용합니다.
만성폐쇄성 폐질환으로 산소포화도가 36%까지 떠러집니다.
4월10일 저녁 당수치가 5백이 넘어 곤욕을 치뤘습니다.
설문 내용에 적합한 답변인지 횡설수설 한건지 머릿속이 어찔어찔하네요.
자세한 것은 호치민 방문하면 궁금한 사항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기억력 감퇴가 심각하고 당수치가 높아 시력을 많이 상실하여 글쓰기가 어렵고 문장.문법.단어도
잘 생각이 나지않아 설문 내용에 제대로 답변이 되었는지 잘못된 부분은 편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베트남의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신 한국일보 직원과
허기자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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