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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란 말에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新라이따이한'[캄란,창민]

SaigonKim 2009. 1. 25. 21:56

 

'아버지'란 말에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新라이따이한'

[연속기획 '新 라이따이한은 누구의 자식인가' ④] 끝나지 않은 신라이따이한의 '한(恨)의 눈물'

[ 2008-12-25 07:00:00 ]

CBS사회부 김대훈·고영규 기자 김대훈


우리나라 남성과 베트남이나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이른바 '신라이따이한'과 '코피노' 아이들이 어머니 나라에 내팽겨쳐진 채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CBS는 이같은 '신라이따이한'과 '코피노' 아이들의 고달픈 삶을 집중 조명해 보고 해법이 무엇인지를 진단하는 5부작 해외취재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25일 네 번째 순서로 40년전 월남 파병이 만들어낸 라이따이한에 이어 최근 경제위기로 베트남을 빠져 나오는 기업인들이 만들어낸 신라이따이한의 눈물을 보도한다. [편집자 주]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인들과 베트남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즉 한국인 혼혈아를 '라이따이한'이라고 부른다. 전쟁이 끝나자 아버지가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한국으로 떠난 뒤 남게된 라이따이한들의 삶은 어떨까.
이제 30대 중·후반이 된 라이따이한들은 여전히 한국에 있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아버지'라는 이름을 듣기만 해도 가슴속에 담은 한(恨)을 쏟아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는 라이따이한들은 베트남에서도 가난 속에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 "사랑하기 때문에 만나고 싶은 한국 아버지"

베트남 호치민에서 북쪽으로 비행기를 타고 1시간을 가야 나오는 캄란지역은 베트남 전쟁 당시 백마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캄란지역에서도 완전히 소외된 지역인 하이동동 지역에 친척들과 고기잡이로 하루를 연명해 가고 있는 으웬 티 미린(37·NEUYEN THI MY LIHN) 씨는 취재진이 40년 가까이 보지못한 '아버지'라는 이름을 꺼내자마자 깊은 한이 서린 눈물을 쏟아냈다.

으웬 씨는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보고 싶고 한국에 가서 한국인 친척들도 보고싶지만 이것은 헛된 바람이다"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한국에 갈 돈도 없는데다 한국에 있는 아버지가 초정장이라도 보내줘야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으웬 씨가 2살 때 당시 백마부대에 있었던 한국인 아버지가 한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을 텐데도 취재진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나라고 질문하자 으웬 씨는 "자신을 안아주던 아버지의 사랑스런 모습이 생각난다"며 아버지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원망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으웬 씨는 "다 이해한다"며 "지금도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꼭 한번 만나고 싶다"며 취재진에게 한국에 돌아가 아버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어렵게 꺼냈다.



1975년 아버지가 한국으로 떠날 당시 엄마 배 속에 있던 남동생 닉 눡 퉁(35·NGUYEN NGOC TUAN) 씨도 아버지라는 이름에 서러운 눈물을 떨궜다.

닉 씨는 "'나'라는 존재를 제발 한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알려줬으면 한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아버지를 찾아줘 우리 가족들과 연락이라도 한 번만 됐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엄마와 찍은 어렸을 적 사진들을 보여줬다.

소위 말하는 1세대 라이따이한들은 현재 베트남에 5천여 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현지 교민들은 전했다.

◈ '40여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신(新) 라이따이한의 눈물'

1세대 라이따이한들의 슬픔은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지금, 신라이따이한의 눈물로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베트남 호치민시 빈탄구에 살고 있는 로안(32·DAO TUYET LOAN) 씨는 지난 2004년 베트남에 있는 한국인 회사에서 만난 남편과 정들어 아이까지 낳고 살았지만 한국인 남편은 지난 2005년 5월 아무말 없이 훌쩍 한국으로 떠나버렸다.

로안 씨는 그 뒤 홀로 한국인 이름을 갖고 있는 아들 장민(4)이를 키우고 있다.

남편에 대한 섭섭한 감정도 있으련만 로안 씨는 아들 장민의 행복한 삶을 만들어 주는데 여념이 없다.

로안 씨는 "우리 애기만 잘 됐으면 좋겠어요. 남편 문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남편은 한국으로 떠난 뒤 한 번도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다.

로안 씨는 그러나 인터뷰 도중 한국말로 '나쁜 놈'이라는 말을 하는 등 한국이 싫어진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로안 씨는 "장민이가 크면 한국에 꼭 한번 보내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고 싶다"고 말하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 '우리의 만남은 운명…아들과 자신을 찾으러 다시 베트남에 올 것'

◈ 실태파악조차 안되는 신라이따이한

최근 한국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베트남에 사업차 왔다 베트남을 떠나는 한국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베트남 여성과 살다가 그냥 훌쩍 한국으로 떠나면서 남게 된 신라이따이한들도 따라서 함께 늘고 있다.

베트남 교민사회에서는 매일 서너명이 한국으로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하고 있으며 신라이따이한들의 숫자는 파악조차 안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40여년전 흘렸던 라이따이한들의 눈물은 세월의 강을 따라 이제는 신라이따이한의 한(恨)의 눈물로 변한 채 계속 흐르고 있다.

 

<글 싣는 순서>

①엄마의 나라로 보내지는 한국 국적의 아이들
②필리핀에서 학교 다니는 선령이와 혜진이
③코피노 아이들, '당신의 아이(?)가 필리핀에서 자라고 있다'
④끝나지 않은 신라이따이한의 '한(恨)의 눈물'

⑤아픔은 치유될 수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