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13784 | |
김 성찬 백마공수특전대용사가 안캐전투에서 고전...
안 캐시 깍산에서 하루 밤을.. 밤이 새도록 안개비가 내리고 추라이에서 김 성찬 백마 등에 타고 안캐고개를 넘는데 비가 내리고 있어 미끄러운데도 불고하고 좌우로 휙휙 휘면서 겁없이 달리고 호랑이는 등 뒤에서 물(?) 쌀뻔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안캐에서 어제밤 사우나도하고 몸은쉬었지만 이순간이 중요한시간 비도오고 638고지 길을 정확이 몰라 측면 정면 공격이냐 하는 결정의 순간이라 얼굴이 모두 굳어있는 시간 안캐의 아침입니다..
일단 638고지를 향해 공격앞으로..
안내원이 보기 안타까웠는지 정을 배 풀고 있다.
백마는 평야는 잘 달리지만 험한 산길은 호랑이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을 안캐패스 공격에서 확인 되었다
포기하지않고 멀리 뒤에서 오르고있는 안되면 되게하라 의 공수특전대다운 끈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전이 뒤로 처진 역전의 용사 아이고 아이고 숨이 차면서도 또 보고 있는 나로서도 포기란 말을 쓰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진정한 군인이었다면 포기라는 단어는 군에서 배운적이 없기 때문이다.
맹호에게 끌려 오르고 있는 백마용사 역시 호랑이가 산악에선 강하다. ㅎㅎㅎ
여기에서 너무 힘들어 백마가 맹호 가를 서로 부르면서 오르기도 했습니다.
김 성찬 전우가 처량해 보이고 백마의 위신을깍는모습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떨지 모르지만 국내 보훈병원에서 여러번 사형선고를 받은바있는 고엽제 환자이며 지금도 산소를 휴대하고 다닙니다. ![]()
안내원이 보기 안타까웠는지 정을 배풀고 있다.
100m만 가면 638정상인데 이곳은 낮익은 교통호이면서 개인호같은 공격해오는 적을 방어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로 느꼈지만 반대로 적이 차지했던 이곳을 탈환하기엔 많은 희생이 있던곳같이 느껴젖다..
향불을 들고 백마공수가 안캐전투에 참전하다..
바로 정상 아래에서 야들을 만나다.낮선 사람들임을 직감하고 경계는안했지만 꼼짝 하지않고 쳐다보고 있었다.
못다한삶 젊은청춘 꽃다운 나이의 전우들이여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로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한을품고 40여년 이곳 안캐라는 산골짜기에서 공포에 시달리며 구천을 떠돌고 게십니까? 우리가 비록 늦게 왔지만 먼저가신 전우님들은 아직도 고히 잠들고 게시지 못하지만 우린 아직 살아서 이렇게 여기까지 왔으면서도 고엽제라는 병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살아서 하늘을 원망하며 떠돌고 있습니다. 전우님들 이젠 고이 잠드소서 또 찾아오리다..
힘내시오 모습이 연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환자이신데 고엽제 폐질환으로 한국에선 코에 호스로 산소를 꼽아야 사시는 분입니다.
옛적 헬기장인 듯 자리가 선명 합니다.
감사드립니다.무사히 여정을 마칠 수 있도록 두 전우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01/21-07:27]-
목적을 달성하시길 빕니다. 한전우님 몸이 성치못한 백마를 나무라지 마십시요. 백마와 맹호가 힘이 부칠때는 서로 등에 태워 주며 긴여정을 보내시길.., 아직도 우렁찬 맹호의 표호와 백마의 뒷발길질은 살아 남아 있으니 힘내십시요. -[01/21-09:05]-
생각이 나는군요. 그때 세사람이 앞서가고 뒤쳐지고해서 각자가 다른코스로 638을 점령했습니다. 가장 늦게 도착한 bat29는 638뒤를 돌아 월맹군 진지를 지나 겨우 올라왔습니다. 오면서 보니까 교통호 진지에 아직 쌘드백 마대자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감회가 새롭군요. -[01/21-09:06]- 시체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행복 했었기에 숨이막히는 고통을 감수 할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뜨거운 태양이 내육신을 달구었다면 산행을 포기 할수도 있었겠지만 다행이도 나의 고통을 먼저간 님들이 알았는지 안개비로 나의 육신을 식혀주어 무사히 638 고지를 오를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01/21-09:38]-
보구 있습니다..근 일년동안 그곳에서 생활한 저로서도 감회가 새롭고 먼저 유명을 달리하신 전우님들 생각에울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쓰도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쩔수가 없습니다..김,한전우님 건강하시고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기갑 1 중대 황진순 올림. -[01/21-09:45]-
안개비 입니다.. -[01/21-09:48]-
평소 알고지내던 베트남인 한 사람이 어느날 향을 한다발 들고 찾아와 같이 가 볼곳이 있다고하여 공동묘지를 찾아가서보니 한쪽 구석에 초라한 무덤 몇구가 있는데 그 베트남인의 말이 안케전투 한국군 전사자들 묘라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정주섭씨가 그 베트남인 에게 물었답니다. "왜 적군의 시체를 같이 이곳에 묻었느냐?" 고 했더니 "살아있을땐 어쩔 수 없이 서로 적이 되었지만 사후에는 모두 평등하다" 그 말을 들은 정주섭씨가 베트남인들의 생각에 감동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베트남 땅에 한국군 전사자의 무덤이 있다는 소문은 점점 현실적으로 나타나는데, 우리 정부는 모르는건지 모른척 하는건지 월남전 시체발굴 전담하는 부서가 없습니다.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고 밀고 밀리는 전투가 안케 638고지 비탈에서 벌어지는 가운데, 그 15일동안 내 목숨 부지하는것도 힘든데 아군이던 적군이던 시체를 치울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참전용사들이 모두 세상을 하직하면 이런 의구심도 묻히겠지요? 그때 딩굴던 적군의 시체는 한국군들은 어떻게 처리 했을까요? 혹시 교통호에 넣고 묻어 버린건 아닌가요? 작년 638고지에 올랐을때 메꿔진 교통호를 보며 그런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01/21-12:52]-
모양입니다.. 비록 헛수고가 될망정 속시원이 확인되어야 할것임... -[01/21-14:02]-
끝까지 진격 하신점, 높이 평가 합니다. 역시 따이한의 기백입니다. -[01/21-14:48]-
소들 역시 한국소 보다 순해 보입니다. -[01/21-19:15]-
기억이 역력한데요 고생들 많으셧씁니다.. -[01/22-10:39]-
안내원에게 말하니 콩드억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묻지안했지만 차가 다닐만한 군사도로 였던것 같았습니다. 박용한 전우님께 당시에 여기까지 차가 올라 왔습니까? -[01/22-14:05]-
맹호26연대는 아직 연대 본부가 없을때 "잠시 1연대에서 군천막 에서 셋방살이 할적에 이곳 638고지에 2개 분대가 먹고자고 안캐도로를 경계하고 있었는데 큰바위가 몇개 있었고 동쪽 뒤편은 무시무시한 정글과 계곡이있었으며 낮엔 자고 밤엔 올빼미로 날을 새곤하였습니다. (만일그때 72년 처럼 월맹군이 공격 했다면 단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주변 고지에 아무것도 없을때로 66년으로 기억 합니다..
황진순: 72 년4월26일 안케전투 끝나고 638 고지에 기지를 신설하여 승리고지라고 명명 했습니다..그리고 전승비도... 그리고 19번 도로 건너편 백두산 기지에 박격포 진지가 없어 박격포 진지를 신설하여 81 미리 포 1 문을...73 년2월2일 기갑 1 중대 철수하면서 월남군 민병대인지 월남정규군인지 우리중대 중대기지를 내려오면서 월남군이 기지를 인수 했습니다..월남이 패망할때 까지 기지에 월남군이 근무했는지는 모릅니다..638고지도...그리고 638 고지밑의 구부러진 도로는 전투후 차량이동하기 위하여 불도져로 새로 길을 내었습니다.. 그 전에는 1 중대 후문으로 밖에 갈수가 없엇습니다.. -[01/22-14:48]-
백하사: 한전우님 김전우님 비오는날 안케고지공격하여 점령하시느라 고생많이 하섰습니다.,,맹호... -[01/22-21:14]-
www.vietvet.co.kr 월남전과한국 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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